Cowboy Bebop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 본문
조선시대 말기에 등장한 작자 미상의 도참서. 고려시대 십팔자위왕 예언의 후속작.
조선의 조상이라는 이심과 조선 멸망 후 일어설 정씨의 조상이라는 정감이 금강산에서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기록된 책이다. 그래서 이름이 정감록이다.
정감록이라는 제목 때문에 세간에는 정도전이 저술했다고도 하고, 혹은 정여립이 저술했다고도 하지만 설득력은 없다. 혹은, 정몽주나 그의 후손이 썼다는 설도 있는데, 조선 건국 당시 흉흉한 민심가운데 이 책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정확하게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18세기 영조, 정조 시대때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정조 9년에 일어난 이율, 양형, 홍복영의 모반사건(정감록 모반사건)에 정감록이 등장하는게 확실하기 때문에 적어도 그 이전에는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도령의 모델이 정성공이나 그의 아들 정경이라고 보는 최근 학설에 의하면 인조 말-효종 연간까지 연대가 올라가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이씨가 망한다는 구절로 볼 때 조선왕조에 반대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정감록이 성리학을 위시한 조선 왕조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민중의 저항 이데올로기로 형성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런 탓에 조선시대에는 금기시 되었지만 민간에서 암암리에 퍼졌다.
필사가 반복되면서 다양한 판본이 나타났지만, 핵심적인 요지는 조선왕조가 망하고 계룡산에 정 씨가(정도령이라는 진인)이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다. 정감록 모반사건의 판본에서는 이씨가 망하고 김씨, 유씨, 정씨의 삼국으로 나뉘었다가 최종적으로 정씨가 통일한다고 나왔다고 한다. 다른 판본에서는 정씨의 계룡산 도읍 8백 년이 있고, 다음은 조씨의 가야산 도읍 5백 년(혹은 천년), 또 그 다음은 범씨의 완산 7백 년(혹은 600년이나 천년)과 왕씨의 재차 송악(개성) 도읍 천년(혹은 500년)이라고 한다. 서기 5천년대까지 예언하다니 우왕 굿 또한 조선왕조가 망하고 정도령, 혹은 정진인이 새 왕조를 세우기 전까지 환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피할 십승지로 피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고도 한다.
묘한것은 십승지로 지목된 곳들이 모두 남부지방이라는 점인데 이로 미루어볼때 정감록의 형성지는 북쪽, 특히 서북지역이었을것으로 보는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규모 봉기인 홍경래의 난이 농민봉기에서 정감록이 본격적으로 활용된 최초의 사례이고, 이 후 홍경래의 이름과 더불어 정감록은 19세기 농민봉기의 바이블처럼 사용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 외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킨 동학 접주 손화중이 선운사 마애좌불상 배꼽 아래에서 꺼냈다는 '비결록'이 정감록이었다 카더라라는 이야기가 오지영의 <동학사>에 기록되어 있다. 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안리에 있는 절로 바위맥 끝지점에 위치한 도솔암 마애좌불상이 유명하다. 이 마애좌불상은 보물 1200호로 지정되었으며 15.6m의 크기로 절벽에 새겨져 있다. 명치 부근 배꼽에 봉인된 흔적이 있는데 이 안에 검단선사가 비결록을 써 넣었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말 전라감사 이서구가 이 비결록을 꺼내기 위해 봉인을 풀었다가 하늘에서 갑작스래 천둥벼락이 내렸고 비결록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연다" 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이서구는 두려움에 다시 봉인을 하였고 19세기 말 손화중이 이 비결록을 가져갔다고 한다.
본문에 나오지는 않지만 정감록하면 항상 언급되는 궁궁을을이란 주문이 있는데, 이것의 해석으로 반란도 일어나고, 조선말~일제강점기의 많은 신흥종교들이 제각기 해석해서 교리로 삼았다.
정감록은 일제강점기까지도 많은 신흥종교의 경전으로 활용되었다. 현재는 십팔자위왕 설이 실제 조선 건국으로 맞아떨어지자,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반란에 적당한 명분을 끼얹으려는 새로운 도참설로 분석되고 있다.
정씨의 유력 대권 주자가 나올때마다 "정도령" 드립이 많이 나왔는데, 특히 현대그룹 정주영회장의 통일국민당 창당과 1992년 대선 출마, 2010년대 들어서는 충청도 출신의 정운찬 총리가 잘 맞아떨어져서 자주 나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아예 정씨 유력 정치인들을 패러디할때도 종종 쓰이는 모양이다. 민주당 정동영 前의원의 경우 본인이 2007년 유력 대권 주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본인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해서 지지자들로부터 정도령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범씨 완산 7백년을 이용하여 새만금 간척이나 방사능 처리시설을 정당화 하는 경우가 부안이나 군산에서 가끔 나왔던 모양이다.
조선말기에 정감록을 신봉하는 서민들이 이미 많았는데 조선이 진짜로 망해버리자 정감록을 당장 실천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서민들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의 북한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하삼도에 이주해서 6.25때 피해를 거의 보지 않게 되었다. 북쪽 사람들이 이주한 길지를 감록촌이라고 부르는데 현재는 젊은 후손들은 대부분 대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서점에 가면 정감록이란 제목으로 여러 책이 팔리지만 내용이 전부 다르다. 사실 원본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최초의 '정감록'을 썼겠지만 이런 금서는 유통금지이기에 '정감록이라는 미래를 다루는 금서가 있더라~'라는 말만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책은 전해지지 않았다. 이런 오리지날 '정감록'에 대한 인기를 바탕으로 B라는 사람도 C라는 사람도 정감록이라는 인지도를 바탕으로 흥행을 노리고 다른 내용이 담긴 '정감록'을 작성했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정감록'의 내용은 계속 증가했다.
대부분의 도참서가 그렇듯 내용이 애매하다. 따라서 독자가 대충 시대상황에 맞춰서 내용을 해독하고 있다. 조선이 멸망했으므로 정감록이 참이다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다 건너 섬나라의 진인이 백성을 구할 것이다'라는 내용을 미국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해서 광복을 맞이하게했다는 사실 때문에 당신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트루먼이 진인(True + Man)이다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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