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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카우보이 비밥 2016. 3. 8. 15:30



쎈돌.
바둑계를 제패한 포스트 이창호 시대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李世乭). 1983년 3월 2일생. 한국의 프로 바둑 기사이다.

조훈현이창호에 이은 세계 바둑 최강의 계보를 이어가는 바둑기사. 세계대회 우승 횟수가 이창호 다음으로 많고, 12세에 입단하여 한국 프로 기사 중 최연소 입단 3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1위는 조훈현 九단의 9세, 2위는 이창호 九단의 11세.


전남 신안군 비금도 출신으로 12세에 프로가 되었다. 형인 이상훈 프로를 따라 입단했으나 자신보다 기재가 뛰어난 동생을 본 형은 '나는 이세돌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은퇴해야겠다'고 선언하고 동생 세돌의 지원에 전념한다.


이름이 꽤 특이한데 그의 이름에 쓰이는 한자인 돌乭자는 한국에서만 쓰이는 한자로, '石'자에 '乙'자를 합쳐 만든 글자다. '석'(石)자는 돌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을'(乙)자는 한자와는 상관 없이 돌의 받침 ㄹ을 나타낸다. 아버지가 지었다고 하는데 정말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중. 바둑돌로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중국과 일본엔 없는 글자이다보니, 일본에선 乭만 도루(ドル)로 표기한 '李世ドル'로 표기한다. 중국에서는 '돌'자를 石(석)으로 바꾸어 이세석(李世石)으로 표기하는 경우와 최근에는 李世乭로 쓰고 乭의 음은 '스'혹은 '따오'로 읽는 경우를 병행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의 언론에서는 이창호 九단과 성씨가 똑같아서 이창호 九단은 '大李'라 부르고, 이세돌 九단은 '小李'라고 부르기도 한다.


1995년에 입단하지만 2000년부터 두각을 나타낸다. 2000년에 32연승이라는 역대 연승 3위 기록을 세우며 '불패소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이후 3년간 바둑계를 휩쓸지만 당시 三단이었다. 이는 이세돌이 더 높은 단을 달기 위해 치러야 하는 승단대회를 제대로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형식에 젖어 과도한 대국수로 스타급 기사를 혹사시키는 승단대회의 문제점은 이전에도 지적되고 있었지만 최초로 그 제도에 정면으로 대항한 것이 이세돌이었다. 三단에 불과한 이세돌이 최우수기사로 선정된 후 메이저 세계대회인 후지쯔배를 우승하고 LG배 결승에 진출하면서 승단대회 무용론이 여론의 지지를 받게 된 것. 결국 한국기원은 2003년부터 승단 규칙에 "세계대회 우승시 三단 승단, 준우승시 一단 승단"을 추가한다.

이세돌은 그 후 5개월만에 세계대회 우승준우승우승을 하여 九단이 된다.


국제 기전 성적

기전1997199819992000200120022003200420052006200720082009201020112012201320142015
잉씨배-×-24강-4강-16강-
삼성화재배×××16강8강32강8강우승8강16강우승우승×8강16강우승준우승8강
LG배24강24강×준우승4강우승8강8강4강16강우승준우승32강32강32강16강16강32강
춘란배-×××-24강-24강-8강-16강-우승-준우승-16강
BC카드배-4강우승우승32강-
바이링배-32강-64강
후지쯔배××××24강우승우승16강우승4강16강8강8강준우승8강중지-
도요타배-16강-우승-우승-8강-
중환배-×준우승-16강-
TV아시아×××××4강××××우승우승준우승×××1회전우승우승
농심배-×××××××××2:0×2:1×××××


이후에도 2009년 5월까지 국내랭킹 1위, 10번째 세계대회 우승을 하는 등 정상급 기사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바둑계에서 (어찌보면) 괘씸죄로 찍혀버려서 징계를 받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이세돌이 2009 한국바둑리그를 앞두고 바둑리그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이유도 있었고 기보에 대한 저작권 문제와 대국료 관련 문제도 있다. 여튼 이런 여러 문제 때문에 징계를 내렸고 결국 이세돌은 '휴직계'를 내버렸다. 이후 이세돌은 사과기자회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여차저차해서 한국기원과의 앙금을 청산하고 복직하자마자 파죽의 24연승과 함께 덤으로 제2회 BC카드배 결승에서 창하오 九단을 3:0으로 압살하면서 세계 타이틀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된다. 세 판 모두 불계승. 참고로 이 대회 16강전에 당시 중국 랭킹 1위이던 콩지에를 상대로 초반에 대마가 잡혀 85집 정도를 잃은 상태에서도 역전승을 했었다. 그날 인터뷰에서는 초반에 밀려서 그냥 두는데에 의의를 뒀다고. 2011년 4월에 제3회 BC카드배 결승에서 라이벌로 여겨지는 구리 九단을 상대로 3:2 신승을 거두고 BC카드배 2회 연속 제패에 성공한다.

이창호의 바둑이 느긋하면서도 안정적인 계산으로 끝내기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세돌은 압도적인 수읽기를 통한 흔들기로 난전으로 끌어들여 상대를 혼란시키고 압살해버리는 스타일이어서 아마추어와 일반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구경하는 사람이 즐거운 바둑. 묘수와 잔수가 아주 강해서 전투가 많이 일어난다. 안 되는 축을 몰아서 승리한 바둑이 이런 데 올라가 있기도 하다.

2012년 12월 13일, 삼성화재배 결승 3번기에서 구리 九단을 2:1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삼성화재배는 통산 4번째 우승한 것. 구리 九단과의 상대전적도 10승 1무 14패로 약간 회복했다.

2014년 동갑이자 최대의 라이벌인 구리 9단과의 10번기를 시작했다. 이세돌-구리 10번기는 제한시간이 4시간에 1분 초읽기 5회. 월드컵 기간인 6월을 제외하고 1월부터 11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 개최되며 먼저 6승자가 나오면 종료된다. 승자는 우승상금 500만 위안(약 8억 4000만 원)을 독식하고, 패자에게는 20만 위안(약 3500만 원)의 여비가 지급된다. 단, 최종 성적이 5승 5패일 경우 상금을 절반씩 나눈다. 자세한 내용은 Milly 몽백합 이세돌-구리 10번기 문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결론적으로는 이세돌 9단이 6승 2패로 승리한다.

2012년까진 삼성배 우승을 하며 세계 1인자의 자리를 지켰으나, 30대에 접어든 이후부턴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준우승만 내리하며 서서히 기량이 하락하고 있다. 2016년 2월 한국 랭킹은 2위(1위는 박정환 9단).  다만 박정환 9단이 세계무대에선 국내무대만큼 기량을 잘 못발휘하는 편이라 아직도 한국바둑에서 이세돌 9단의 위상은 죽지 않았다.

2016년은 연초부터 굵직굵직한 대국이 이어지고 있는데, 몽백합배 결승전에서 커제와 접전 끝에 준우승을 했고, 이후 박정환 9단과 제34기 KBS바둑왕전, 제43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에서 결승대결을 펼치면서 일명 8번기를 펼쳤다. 바둑왕전에서는 박정환에게 첫 판을 딴 후 내리 두 판을 내주며 준우승했으나, 명인전에서는 3승 1패로 박정환을 꺾으며 통산 4번째 명인전 우승을 차지하여 2014년 렛츠런파크배 오픈토너먼트 이후 오랜만에 국내기전 우승을 차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