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숙빈 최씨

카우보이 비밥 2016. 3. 29. 13:10



(1670년 12월 17일 ~ 1718년 4월 9일)

조선 숙종대의 인물. 숙종의 후궁으로 영조의 어머니이며 장희빈과 더불어 일명 조선판 신데렐라. 단, 장희빈은 중인 집안 출신이었지만 숙빈 최씨는 이보다 더 격이 낮았다. 진짜로 신데렐라.

1670년 음력 11월 6일(12월 17일) 최효원의 딸로 태어났다. 정말 단박에 신분이 고속상승한 케이스라서 로또 맞은 인생이라고밖에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처음에는 종 4품 숙원이었으나 임신 등을 거쳐서 정1품 빈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사후 "화경"이라는 시호를 받아 화경숙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출신이 불분명하여 여러가지 설이 많다.

원래 궁녀도 아닌 무수리인데다, 천민 출생에 심지어 결혼을 했다가 남편과 사별한 기혼녀였다는 주장도 있다. 무수리는 궁녀와 달리 꼭 처녀여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궁에만 머물지 않고 출퇴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영조에게는 아버지가 다른 형이 있다는 소문, 심지어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 전 남편의 아들이라는 소문까지 돌았고, 영조가 이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영조가 숙빈 최씨와 숙종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므로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단, 영조의 친형은 어려서 죽었다. 그래서 영조가 숙빈최씨의 차남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다가 숙종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었는데, 기록에 남는 이야기로는 인현왕후가 폐서인이 되어 사가에 나가서 살던 시절, 인현왕후의 생일에 인현왕후를 모셨던 적이 있는 그녀가 인현왕후를 위한 기원을 올리고 있던 모습을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숙종이 목격하는 바람에 눈에 띄게 되어 후궁이 되었다고 한다.(이문정의 수문록)

다른 기록에서는 인현왕후가 쫓겨나간 사가에서 어느 날 밤 홀로 바느질을 하고있다가 후원을 지나가던 숙종이 뒷태가 아름다워 잠시 들어가서 만남을 가졌다 한다. 그런데 낮에 한번 더 본 이후 외모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찾지 않았다 한다. 심지어는 왕자인 훗날의 영조가 태어나서도 무덤덤. 하지만 이 설은 신빙성이 낮은 게, 일찍 죽기는 했지만 그녀 소생 왕자가 영조 앞뒤로 둘이 있다. 낮에 본 뒤 찾지 않았다면 이 두 왕자는 어디서 온 거란 말인가. 거기다 영조가 가례할 때의 비용이 만만찮았다는 등, 의외로 영조와 숙빈 최씨를 편애했다는 걸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또 영조의 외모가 조선 시대의 미인상이라 할 수 있는 얼굴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숙빈 최씨의 외모 역시 적어도 나쁘진 않았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전염병으로 고아가 된 그녀가 산신령의 계시를 받고 나주 목사에게 거둬졌는데 목사의 부인이 인현왕후의 친척이었기에 인현왕후가 입궁할 때 같이 입궁하였다고 한다. 혹은 인현왕후의 부친인 민유중이 영광 군수로 부임하는 길에 다리 옆에서 그녀를 거뒀으며 인현왕후의 입궁시에 나인으로 입궁했다고 한다.

고종은 영조가 말하길 숙빈 최씨는 침방의 궁녀였다며 무수리 설을 부정했는데 영조의 컴플렉스 등을 생각해보면 이쪽은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다. 침방 궁녀는 내명부에서 꽤 높은 편에 속한다. 지밀 궁녀 바로 다음이 침방 궁녀.

후궁이 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그녀의 숙모의 사위 김해성이 그녀를 독살하려고 했다는 혐의로 문초를 받을 때 원래 구걸을 하면서 살았다가 그녀가 숙원에 봉해지면서 도움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을 보아 야사에서처럼 천민이 아니더라도 매우 가난하고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