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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희빈 장씨)

카우보이 비밥 2016. 3. 2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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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빈 장씨, 이름은 장옥정(張玉貞). 희빈은 후궁의 지위 중 하나. 내명부 정1품 후궁 '빈'(嬪)으로서 받은 작호가 '희빈'이다. 그녀의 오빠의 이름이 장희재라서 '희'자 돌림인줄 알고 착각하기 쉽다. 다만 이름으로 알려진 장옥정은 인현왕후전에서 나올 뿐, 실제 역사서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있다.

숙종의 후궁이었으며, 한 때는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경종의 생모. 조선의 역사상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올라간 유일한 여성이다.

공식적인 역사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그녀의 미모가 아름다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후대에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사극에서는 장희빈 역할을 맡는 배우는 무조건 미인을 캐스팅한다. 역사적 인물을 재해석한다고 해도, 미인이 아니었다는 설정이나 미인이 아닌 배우를 캐스팅하는 경우가 없다.


산림숭용과 국혼물실을 당의 제1 강령으로 추구했던 서인, 특히 인현왕후 민씨의 배경 세력이었던 노론에게 강력한 적으로 규정되었다. 1701년(숙종 36년) 숙빈 최씨의 발고로 인현왕후의 죽음을 기원하는 저주굿을 한 혐의를 받고 숙종에게 자진을 명 받아 사망하였다. 그녀의 아들인 경종이 사망하고 숙빈 최씨의 아들인 영조가 즉위하자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원을 위시한 노론은 인현왕후의 폐위와 죽음의 범인이자 3대 환국(기사환국, 갑술환국, 신임사화)의 원흉으로 정의하여 비난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집필되어 민간으로 보급된 인현왕후전, 수문록 등의 언문 소설과 야사집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역사 서적과 드라마 등에 중요 사료로 활용되었다.

아들인 경종이 그녀를 추존했기에 그녀의 정식 칭호는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이다. 그녀를 기리는 사당의 이름도 대빈궁(大嬪宮)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묘소(대빈묘)는 왕을 낳은 다른 후궁들과 다르게 '원'(園)이 아니라 '묘'(墓)다.

그녀에 관해 널리 알려진 일화로는 임금의 승은을 받은 궁녀였던 숙빈 최씨를 잔혹하게 매질했다거나 사약을 거부하며 저항하다 비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 심지어 사약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아들 경종의 성기를 잡아당겨 성불구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으나 모두 정확한 근거가 없다. 야사나 후대의 소설, 드라마로 각색되면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기황후나 천추태후, 명성황후와 반대로 나라의 쇠퇴나 멸망에 기여한 인물도 아닌데 사실과 다른 루머들로 두고두고 악녀의 전형이 되어 까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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