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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쌍둥이가 있었을까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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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쌍둥이가 있었을까요?

카우보이 비밥 2016. 5. 14.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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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쌍둥이는 전생의 인연으로 태어난다고 생각을 했죠. 

동성(同性, 男男 혹은 女女 )쌍둥이는 사회에서 생활하는데 크게 지장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성(異性)쌍둥이입니다. 이성쌍둥이는 전생에 부부지간이었는데 그 한이 남아 현세에 쌍둥이로 태어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현세에서 이 쌍둥이 남매는 전생의 부부인연 때문에 같이 성장한다는 것은 옳지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유교문화에서 배척하는 근친상간의 가능성도 있고 해서 이 경우에는 어느 한쪽을 포기하게 되는데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우리 문화에서는 여아(女兒)를 많이 포기했습니다. 


아이를 포기할때는 출산과정에서 바로 행해지는데 태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두고 후산으로 태반이 나오면 태반과 함께 아이를 짚으로 써서 놓아두면 자연히 숨이 끊어진다고 합니다. 이 방법은 언청이나 장애아를 출산할 경우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꼭 이 방법으로 포기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이를 특정한 장소에 유기해서 자연사시키거나 혹은 누군가에 의해 길러지도록 하죠. 


쌍둥이 중에 어쩌다 한 아이가 먼저 죽으면, 매장할 때에 그 아이의 옆에 가짜 형제를 만들어서 묻어줍니다. 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거나 절구공이를 반토막내어 같이 묻습니다. 이것은 쌍둥이가 같은 운명을 타고 나서 남은 아이의 죽음을 방지하기 위한 겁니다. 살아남은 아이를 죽은 것으로 간주하여 살아있는 아이의 목숨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죠. 


삼국사기 문무왕 16년(676) 기록에 의한 것으로 그당시 다산정책(출산장려)을 표방하였는데 쌍둥이를 낳으면 경사로 보와 나라에서는 쌍둥이를 낳은 처에게 쌀가마니를 주었다고 합니다. 신라가 비록 정치는 폐쇄적인 정치를 하였지만 성문화에서는 어느 정도 개방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이 빈번히 일어날때에는 남성 장정이 많이 필요하였을 것이고 이로 인해 출산 장려를 많이 권장하였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출산 장려 정책 중 쌍둥이는 말 그대로 경사징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선 유교에서는 쌍둥이를 어떻게 보왔는지 모르나 이 때에도 아마 경사로 생각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쌍둥이 하니까 예전 대장금 방송이 생각나는데 중종의 제2계비인 문정왕후가 쌍둥이를 낳을려다가 배속에서 사사된 적이 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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