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wboy Bebop
한센병 본문
나병
癩病
문둥병(순우리말)
피부 및 점막, 안구에 발진과 각종 염증을 일으키고 피딱지와 출혈 징후를 보이며 해당 부위에서 감각을 잃어버리거나 반대로 과민하게 감각을 느끼게 되는 전염병. 피부의 병변이 광범위하게 홍반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흉측해지며, 이처럼 눈에 잘 띄는 징후가 전염성과 더불어 이 병을 '문둥병'이라 부르며 신의 저주처럼 취급해 환자들과의 접촉을 꺼리게 만드는 한 이유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나라의 경우 이 병을 가진 환자는 징병검사에서 6급으로 병역이 면제되며 등록된 자는 직권으로 병역면제 처리된다. 더 악화되면 신체의 말단부가 썩어 문드러지는 지경까지 가며(정작 환자 본인은 통각이 약해져서 그 사실도 못 느낀다.) 이때 손상된 피부에 또 2차적인 세균 감염이 일어나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쉽게 말해서 산 채로 부패한다는 것. 그래서 일단 유대교(구약성서에 상세하게 써 있다)를 포함해서 세계 대부분의 문명에서 신의 저주급 취급을 받았다.
종류
Lepromatous leprosy의 경우 발병 초기 한정으로는 오히려 일반인보다 피부가 하얗고 매끈해져서 '이쁜 나병'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외견상 그런 것이고, 사실은 면역체계가 무너져 피부가 죽어가는 전초증상이다. 당연히 초기를 벗어나면 피부가 문드러져 흔히 문둥이라 부르는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버린다.
크게 나종형과 결핵형의 2가지가 있다. 나균(Mycobacterium leprae)에 의해 감염되는 만성 전염성 질환이며 나병(癩病)이나 문둥병이라고도 하는데, 나병이나 문둥병이라는 말은 한센인들이 싫어하므로 한센병으로 부르는게 예의다.
1871년 노르웨이의 의사 '예르하르 헨리크 아르메우에르 한센(Gerhard Henrik Armauer Hansen)'이 나환자의 나결절의 조직에서 세균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여, 1874년 'Bacillus leprae'라 명명함으로써 '한센병'이라는 말이 유래하였다. 말초신경과 피부에 주로 침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타 부위의 조직에 침범하기도 한다.
한의학에서는 가라(痂癩)·풍병(風病)·대풍라(大風癩)라 하였고, 치료가 불가능했던 시대에는 천형병(天刑病) 또는 업병(業病)이라 하였다. 참고로 동남 방언의 문디가 바로 이 문둥이에서 온 말.
감염
한센병은 치료받지 않은 환자에게서 배출된 나균에 오랫동안 접촉한 경우에 발병한다. 그러나 전세계 인구의 95%는 나병에 자연 저항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균이 피부 또는 호흡기를 통하여 체내로 들어오더라도 쉽게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 나균을 배출하는 환자의 경우도 리팜핀(리팜피신) 600mg을 1회만 복용하여도 체내에 있는 나균의 99.99%가 전염력을 상실한다. 따라서 한센병은 비록 제3군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되었지만 격리가 필요한 질환이 아니며, 성적인 접촉이나 임신을 통해서도 감염되지 않는다. 아울러 결핵을 예방하기 위해 신생아 때 실시하는 BCG 접종이 부수적으로 한센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약 75%를 차지하는 결핵형은 증상도 가볍고 자연 치유확률도 높지만 나종형은 전염성으로 방치하면 악화된다. 걸릴 확률이 매우 낮고 설령 걸리더라도 국가에서 완치될 때까지 100% 전액지원을 보장해주는 병이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걸려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함부로 노출되지는 말자. 이게 그렇게까지 전염률이 약하고 예방책이 확실한 병이라면 이미 천연두처럼 세상에서 사멸해버렸을 것이다.
치료
전근대시기에는 불치병으로 취급받고 현대의 암 이상으로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극소수의 어지간한 경우를 제외하면 주사 1번에 리팜피신을 주성분으로 한 여러 종류의 항생제를 같이 먹는 간단한 방법으로 완치가 가능하다. 항나제 복합요법 (multidrug theraphy:MDT)이라고 하며 세계보건기구 권고사항은, 분류방법은 피부소견, 병리소견 등에 근거하여 5가지로 나누는 Ridley-Jopling 분류와 임상에서 피부도말검사를 실시하여 다균나(multibacillary leprosy, MB), 균이 거의 관찰되지 않는 희균나 (paucibacillary leprosy, PB)의 2 가지 형태로 분류하여, 희균나의 경우 6개월 항나제 복합요법을, 다균나의 경우 24개월간 복합요법을 시행하여, 3~5년간 추적하여 치료종결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더 자세한 것은 하단의 국립보건원의 PDF문서 다운로드 링크를 통해서 찾아보자. 여러 경우에 따라 좀 더 정확한 항생제의 조합을 설명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그리 안 어렵다.
한국에서는 치료 비용을 전부 국가에서 부담한다. 그렇다고 손상된 사지가 재생되는 건 아니지만... 이런 후유증이 남아있어도 완치환자으로부터의 감염 위험은 소멸한 상태이다.
환자에 대한 혐오와 기피
징후상 여러모로 혐오적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병이라 환자들은 세계적으로 괴물 취급을 당했다. 벤허에서도 벤후르의 누이와 어머니가 이 병에 걸렸던 걸 보고 기겁하던 게 괜히 나온게 아니다. 로마시대를 비롯하여 아득한 옛날부터 혐오적인 인식이 깊었다. 한국에서도 이 병에 대한 인식이 심해서, 전염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사람들이 믿었고 여러 나라에서 어린아이 간 빼먹기라는 괴담까지 존재했을 정도다. 이런 대접때문에 나환자들은 사회에서 쫒겨나기 일쑤였고, 그러다보니 정말로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러면 그런 소문이 더 심해지고... 실제로 타이에선 이 병에 걸린 환자가 아이들을 납치해 죽여 실제로 간과 여러 부위를 먹기까지 했던 일이 벌어졌다.
과거 이스라엘과 유대에서, 한센병 환자는 부정한 것이었기에 가족과 떨어져 살았으며 법적으로 방울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누가 가까이 오면 방울을 흔들어 나 문둥병자요 하고 알려야 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에 보호시설이란 이름으로 환자들을 노예 부리듯이 온갖 악랄한 짓을 가한 적이 있다. 심지어 스오 마사히데(周防正季)[5]라는 원장이라 쓰고 천하의 개쌍놈은 자기 동상도 세우게 하고 (동상은 세계대전당시 전쟁물자로 차출 (공출)되었으나 일부 구조물은 여전히 존재한다.) 참배를 강요하며 자기 미화에 빠졌던 자인데 1942년 원생이었던 이춘상(李春相)의 칼에 죽었다. # 오랫동안 잊혀진 이춘상을 두고 제 2의 안중근 의사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하지만 이춘상의 후손들은 한센병 환자인 것 때문인지 이춘상에 대하여 알리길 쉬쉬한다고 한다. 다만 그 이전의 원장들 중에는 일본인임에도 한센병 환자 복지에 여러모로 신경을 기울여서 지금도 위대한 의료인으로 추앙받는 인물(하나이 젠키치)도 있긴 하다. ###
사실 한국에서도 한센병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아예 기록상 호적 자체가 지워지고 자동으로 소록도 등에 끌려가다시피 격리되던 시절도 있었다. 실제로 11살에 불과했던 어린 아들이 한센병 판정을 받아 소록도로 혼자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한 아버지의 실화도 있다.[7]
소록도에서는 한센병 환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많았는데, 수직감염으로 전염되지는 않기에 아이들은 정상인이었고, 따라서 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전염을 막기 위해 부모로부터 격리되어 생이별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아무리 전염력이 약하다 한들, 부모자식 관계처럼 매일같이 부대끼는 수준의 접촉이면 정말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센병 환자 대다수는 다름아닌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나병균이 옮겨붙었다. 특히나 신생아는 면역력이 없다시피하니 비극적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1년 중 단 하루만 유일하게 체육대회라는 명목으로 상봉 기회가 오는데 이 날은 민간인도 소록도 내부 출입이 가능한 유일한 날이며 행사 취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섬 전역이 눈물바다로 변한다고 한다. 부모는 자식이 다가와도 행여 자신의 병이 옮을까 하는 걱정에 손짓해서 쫓아내니….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한센병 환자들이 격리된 섬 소록도 내의 병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현대에는 거의 없어졌지만, 소록도에는 아직 한센병 환자들이 450명 가량 남아 있다고 하며, 2000년대 이후부터 외부 유입이 현저하게 줄었고, 소록도 한센인들의 평균 연령대가 50대 후반이기 때문에 향후 10년 이후에는 "한센인 거주지로서의 소록도"의 이미지는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한센병 환자는 소록도 외에도 각지에 퍼져 있으며, 소록도 외에도 전국 각지에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해 치료하는 시설들이 위치해 있다. 단지 소록도의 인지도가 가장 높은 것.
1957년 8월 28일에는 경남 사천군 서포면 비토섬에서 섬 개간권을 둘러싸고 최소 28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주민들에게 학살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한센병 자체는 전염력이 약하지만(그렇다고 전염이 아주 안 된다는 건 아니다. 수직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일단 걸린 사람은 외부로부터 전염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센병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나도 안 좋게 굳어져 있기 때문에, 일단 한센병 치료원이 들어서면 그 동네 땅값은 흉흉한 소문에 휩싸여 폭락한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전염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 집값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주민들이 결사 반대하게 된다. 해당 뉴스. 이처럼 한센병의 이미지는 이미 단순한 질병을 넘어서는 저주나 괴질처럼 취급된지 오래다.
2014년 6월8일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소록도를 취재했는데 법원에서 국가에 의한 인권문제로 인한 피해보상판결에 승소했음을 알렸다. 인권문제에 관련된것은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정부수립이후에도 강제낙태와 단종을 강요받았다는것이었고 위에 설명에도 나와있듯이 유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낙태등의 의료 행위가 행해졌고 격리되어 살아야 했기에 정부에서 피해를 보상해야 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이 정부에서 이에 대해서 항소를 결정했고 이는 일본이나 대만정부의 대응과는 확실하게 비교가 되는 행동이다. # 다행히 항소에도 불구 한센병 환자들이 다시 승소했다고 한다.머니투데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