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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악녀 장녹수 본문

역사

조선시대 악녀 장녹수

카우보이 비밥 2016. 5. 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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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녹수, ? ~ 1506

조선 연산군의 후궁.

실록에 의하면 장녹수의 아버지는 문의현령을 지냈으며 언니는 내수사의 공노비였다. 따라서 얼녀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보로 유명한(...) 제안대군의 가노로 춤과 노래에 능했다고 한다. 시집을 두 번 갔던 유부녀에 아이가 딸려 있었다는데, 어떤 경위인지 일이 잘 풀려서 연산군의 눈에 띄어 입궐하였다. 처음에는 종4품 숙원에 봉해졌고 그 후 종3품 숙용까지 간다.

엄청난 동안이라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10대 소녀와 같은 얼굴이었으며, 연산군이 원하는 것을 잘 알아 비위를 잘 맞추어 주었다고 하는데... 기록을 보면 연산군의 아명을 부르며 때리고 꼬집고 조롱했다고 하니 대체 저게 어떤 식으로 비위를 잘 맞춰준 건지 의문이다(...) 연산군의 마더콤 의혹을 지울 수 없게 하는 부분.





이러한 연산군의 총애를 등에 업고 이런저런 권세를 휘둘렀다. 뇌물을 받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고 등등. 하지만 의외로 장녹수의 악행은 기껏해야이게 전부다. 뇌물 받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 축적은 당시 관료들에게도 어느 정도 관행처럼 용인되던 일이었다. 물론 출신을 고려해 보면 엄청난 편이긴 하지만 당시 관료들보다 유독 많이 부정축재를 한 것도 아니었으며 조정 요직에 자기 일족을 심지도 않았다. 형부 김효선이 당상관에 오르긴 했지만 이것도 거의 연산군 말년에 가서야 이루어진 일이고 제대로 출사한 사람은 이 한 명 뿐이었다. 물론 조정 관료들이 장녹수 집을 짓는 걸 감독하기도 했지만, 이건 연군산이 관료 길들이기 식으로 진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쨌든 당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만 해도 원성을 사기에는 충분했다.

1504년에는 궁녀 전향, 수근비가 뜬금없이 장형 80대씩을 맞고 유배된 이후 능지처참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심지어 이들의 분해된 머리와 사지를 순회공연하듯 돌려가며 전시하는 대역죄와 맞먹는 처우를 할 정도였는데도 도대체 이들이 왜 이런 처우를 받았는지에 대한 전말이 불명확하다. 다만 이들의 미모를 질투한 장녹수의 모함으로 발생했다는 사관의 추측만 전할 뿐이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1505년에는 기생 옥지화가 장녹수의 치마를 밟은 죄로 가혹한 고문을 당한 끝에 효수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할 정도였으니 이미 연산군이나 장녹수나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이 몰락하자 장녹수는 반정세력에 의해 연산군의 또다른 후궁인 전비, 백견 등과 함께 군기시 앞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그녀의 시신은 처형된 그자리에 그대로 버려졌고 분노한 군중들이 장녹수와 전비 시신의 생식기에 돌을 던지면서 "나라의 고혈이 모두 여기로 빨려들어갔다!"라고 외쳤으며 군중들이 던진 돌에 순식간에 돌무덤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실록의 기록은 이렇지만 생식기에 돌을 던지는 게 워낙 노골적이라서 그냥 시신에 돌을 던졌다고 묘사한 책이 많다.

연산군의 의중을 잘 알았는지 반정 일주일 전인 8월 23일, 잔치를 즐기던 연산군이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아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人生如草露, 會合不多時)"이라고 시를 읊자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녀와 전비만이 통곡을 했다고. 이에 연산은 둘을 안으며 "지금 태평한 지 오래이니 어찌 변고가 있겠느냐? 하지만 만약 변고가 있으면 너희는 무사하지 못하겠지"라고 같이 울었다고 한다. 





버라이어티한 연산군 시대를 한층 더 드라마틱하게 만든 인물. 연산군을 다루는 사극에서는 반드시 주요인물로 등장할 뿐 아니라 타이틀로 직접 나선 적도 있다. 워낙 캐릭터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연산군의 정실 부인인 폐비 신씨조차 제치고 연산군의 진짜 아내처럼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연산군 시대가 워낙 사극화가 많이 된 만큼 연산군과 단짝인 장녹수도 사극에 많이 출연했는데 어째서인지 최후를 실록 그대로 그려낸 사극은 단 한 편도 존재하지 않았다. 본시 군기시 앞에서 정식 절차를 밟아 참형이 집행되고 시체가 거리에 전시된 이후에야 백성들이 몰려들어 돌을 던졌는데 어째 사극에는 장녹수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돌 맞고 죽는 걸로 묘사되거나 아니면 반정군이 그 자리에서 척살해버리는 식으로 처리되는 게 대부분이다. 더불어 위에 언급한 전향, 수근비, 옥지화 등의 사건은 극적인 요소가 충분함에도 사극에서 줄줄이 배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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