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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초대 국왕 태조 이성계 본문

역사

조선의 초대 국왕 태조 이성계

카우보이 비밥 2019. 2. 10.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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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초대 국왕.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고황제(高皇帝). 초명은 이성계(李成桂)로, 세간에는 다른 역대 국왕과 달리 태조라는 묘호보다는 이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조선의 국왕으로 즉위한 이후에 이름을 단(旦)'''으로 바꾸었다. 후에 대한제국의 고종이 그를 황제로 추존하였다.

사방팔방에서 헬게이트가 열리며 멸망 직전까지 몰렸던 고려 말기에 전국 각지의 반란군과 한족 반란군인 홍건적, 멸망한 원나라의 군벌, 역사상 최악의 패악질을 부렸던 왜구, 그리고 심심하면 침입했던 여진족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동아시아에서 싸울 수 있었던 적들을 상대로 전부 승리하고 수만 명씩 개박살을 내버린 인간흉기다. 한마디로 왕이 되지 않았어도 이순신과 쌍벽을 이루는 '상승불패(常勝不敗)의 명장'으로 칭송받았을 위인.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수많은 세력들을 평정한 그도 인생에 있어 딱 한 번 전투에서 패배하는데 그것이 바로 아들 이방원과의 싸움인 조사의의 난이다.




고려 말기, 권문세족의 전횡으로 개판 5분 전이었던 현실에 불만이 폭발해버린 정도전, 남은, 조준, 윤소종 등 신진사대부들과 손을 잡고 힘을 키운 뒤 요동 정벌, 명나라 공격에 떠밀려 참전하여 압록강 위화도까지 갔던 때 반란을 일으켜 역으로 고려 조정을 공격한 위화도 회군 사건으로 우왕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4년 동안 권력 장악 준비 작업 끝에 마침내 공양왕을 쫓아내 고려를 뒤엎고 새롭게 조선을 개국한다. 정도전 등과 함께 조선 왕조 500년의 기반을 닦았으나, 후계자 문제로 아들 이방원의 반란을 겪고, 권력에서 밀려나 비교적 불우한 말년을 보낸 끝에 사망했다.




조선 왕조에서 가장 많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58세), 영조 다음으로 장수하고, 동시에 두 번째로 많은 나이(64세)까지 재위한 왕이다. 숙종이 60세, 중종과 선조가 57세, 고종이 56세, 세종대왕이 54세, 태종이 52세, 광해군이 49세, 정종은 44세까지만 재위했다. 영조는 31세에 즉위해서 훙서하기까지 약 52년간 호랑이 등을 탔다. 조선 왕 평균 수명이 47세 정도인데, 이성계는 47세에 동북면 도지휘사(관찰사 수준)의 지위였고, 의안대군 이방석을 얻었다.

조선 왕조의 개국자였기에 조선 시대에 쓰인 기록에서는 행적에 대해서 필요 이상의 신격화도 많은 편이지만, 전반적인 기록을 보면 호방하고 성실하며, 전장에서는 적조차도 자신의 친위대로 삼아버리고 정적들조차도 친구라며 쉽게 죽이지 못했던 인간성이 발견된다. 표독스럽다는 평을 받는 아들 이방원과는 여러모로 다른 그 인간성과 전쟁에서의 실력만큼은 한국사에서도 압도적인 영웅. 그러면서도 잔인해질 수 있을 때는 한없이 잔인해지거나, 여러 일화나 실제 기록으로도 흡사 곰 같은 체구의 용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계산에도 능한 여우의 지혜도 갖추고 있었다. 




거의 혼자서 고려를 구한 수준의 전설적인 전공을 세웠고 고려 말의 폐단에 일격을 날리며 새 나라를 창업한 위인이지만, 그 과정에서 민중의 신망이 높았던 최영을 죽이는데 일조하기도 하였고, 전국의 왕씨를 조직적으로 학살하는 등으로 인해 왕씨 문중에서는 가문의 철천지 원수나 다름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왕씨가 아니라도 왕씨와 연을 맺고 있던 개성 사람들은 일가붙이를 학살한 이성계를 굉장히 증오했다. 왕웨이중? 조선이 망할 때까지 조선과 한양 자체를 싫어했을 정도이다. 특히 개성에는 위구르인들이 꽤 살았는데 이 잡듯이 학살한 이성계가 고려 말기에 그나마 중국에 비해 적은 수였던 몽골계란 몽골피는 다 없앴다고 볼 수 있다.




변방의 무인에서 시작하여, 외적과 맞서 싸워서 두각을 나타낸 끝에 결국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아들의 반란으로 인해 권력의 자리에서 밀려나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인생 자체가 사실상 한 편의 드라마같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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