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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 청부피살사건 (영남제분 여대생 청부살인사건) 본문

사건,사고

여대생 청부피살사건 (영남제분 여대생 청부살인사건)

카우보이 비밥 2016. 3. 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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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6일, 이화여자대학교 법과대학에 재학중이던 하지혜 양이 대기업 회장 부인의 지시를 받은 살인 청부업자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된 사건. 당시에는 일반적인 '묻지마 범죄'나 원한관계에 의한 사건 정도로 여겨졌으나, 그 배후가 밝혀지면서 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온 사건이다.



발견

2002년 3월 6일, 하지혜(당시 22세) 양이 새벽 5시 반쯤에 수영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 후 연락이 끊겼다. 가족은 평소 속을 썩이지 않던 하 양이 돌아오지 않자, 후술할 가정사에 겹쳐서 큰 근심에 빠졌다. 결국 하 양의 아버지가 수소문한 끝에, 3일 후인 9일 딸이 납치되는 CCTV 영상을 확보, 그 전까지는 단순 실종으로 수사할 의지가 없었던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진전되지 않던 수사는, 열흘 뒤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에서 등산객에 의해 하 양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세상을 경악케 할 서막을 올리게 된다.

하 양의 시신은 그야말로 참혹했는데, 머리와 안면에 6발의 총상을 입었으며, 부검 결과 한쪽 팔만 해도 3군데나 골절되는 등 잔혹하게 구타한 흔적이 발견되어, 그녀가 죽음을 맞기 직전에 느꼈을 공포와 고통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초기에 수사 상황을 자세히 모르던 언론과 여론은 하 양이 '묻지마 살인' 의 희생양이 된 것이 아닌가 추정했으나, 실제 수사 상황은 달랐다. 하 양의 아버지는 당시 딸에게 문제가 되었던 사건과 수상하게 여겨지는 인물 등을 경찰에게 진술하였으며, 이후 증거도 속속 나오면서 경찰은 구체적인 수사방향을 이쪽으로 잡았다.


사건의 배경

2001년, 하 양과 그녀의 가족들은 한 여인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서 승소했으며, 접근금지 명령까지 얻어냈다. 다소 뜬금없게도 이 여인은 하 양의 이종사촌 오빠 김모 판사의 장모이자, 당시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이었던 윤길자(당시 58세) 씨였다. 그녀는 1999년 사위 김 판사의 여성관계에 대한 괴전화를 받은 후 김 판사의 외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에 김 판사의 전화내용을 추궁하던 도중 김 판사가 엉겁결에 전화상대로 둘러댄 사촌 여동생 하 양을 불륜의 상대로 판단하기에 이른다.

평소부터 의심이 많던 윤 씨는 한번 의심을 품자, 상상 이상의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위를 감시하기 위해 딸 내외의 방에 도청장치를 심는 한편, 자신의 재력을 이용하여 하 양의 미행을 지시한다. 

여기에 동원된 이들만 해도 25명에 이르렀다. 현직 경찰, 심부름센터 직원 등이 동원되어 이중삼중의 미행망을 구축했으며, 가족의 운전기사로 일하던 조카 윤남신(당시 42세) 씨에게 미행망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기고, 종종 찾아가 상황을 살폈다. 심지어 윤 씨 본인이 승복 차림을 하고 변장하여 직접 감시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녀는 하 양의 자택 전화를 비롯하여 하 양 친구들의 전화번호까지 알아내서 전화를 하고, '하 양과 김 판사가 같은 건물로 들어가는 사진'에 3억 원의 현상금을 거는 등 윤 여사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당시 하 양을 미행했던 사람들이 목격한 그녀의 동선은 집—학교—도서관이 전부였다. 당시 미행한 사람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 양은 결코 불륜과 연관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윤 씨에게 직접 "이제 그만 합시다" 하고 말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 씨는 오히려 심부름센터 직원들에게 역정을 내면서, "도서관 지하에 비밀 출입구가 있는데, 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서 조사하지 않느냐?!" 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누가 하나 죽어나가야 이 일이 끝날 것 같다" 라는 예상을 하기도 했는데, 불행히도 이 예상은 가장 비극적인 형태로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미행 가담자들도 사법 처리됐다.

2년여에 걸친 미행에도 아무런 성과가 없자, 윤 씨는 2001년 하 양과 그 가족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이 일로 하 양 가족들이 미행의 배후에 윤 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김 판사가 다소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바람에 윤 씨는 오히려 더 하 양에 대한 의심을 굳혔다는 것. 윤 씨는 되레 하 양의 가족에게 욕을 퍼부어댔다. 이후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결국 하 양과 가족들은 상술했듯이 법정을 통해 윤 씨와 미행인들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을 얻어내어, 그녀의 지긋지긋한 망상과 집착을 떼어냈다. 그때까지는 그렇게 보였다.


사건의 전말

당연한 결과이지만, 당시 접근금지 신청을 놓고 하 양의 가족과 벌인 소송에서 대단히 불리해지자, 자신의 사위와 하 양이 대놓고 불륜행각을 벌일 것이라고 판단한 윤 씨는 눈이 뒤집혔다. 윤 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당시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황에 놓여있던 조카 윤남신에게, '돈을 줄 테니 하 양을 살해하라' 라며 살인을 청부하기에 이른다. 

조카 윤 씨는 돈이 탐이 나긴 했지만, 혼자서 이 일을 수행하는 것이 겁나서, 친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인 김용기 씨를 끌어들였다. 이 둘은 범행의 대가로 윤길자 씨로부터 1억 7,5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선수금으로 받은 5,000만원으로 하 양을 살해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들이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하 양을 독살하는 방법이었다. 미리 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준비를 했으나, 기회를 잡지 못하는 사이에 하 양의 가족이 소송에서 승리, 윤 씨 일당이 접근금지 명령을 받음에 따라 원천 봉쇄되고 만다. 이에 윤 씨는 목표를 하 양의 아버지에게로 옮겼다. 조카와 김 씨는 무려 3번이나 기회를 노렸으나 모두 실패한다. 윤 씨가 3번째로 지시한 영남제분 고위급 간부의 살해마저 실패하자, 살인을 청부한 윤 씨도, 살인을 청부받은 이들도 모두 심적인 한계에 도달했다.

이들이 다시 노린 것은 최초의 목표였던 하 양이었다. 1달간 하 양을 미행하여 그녀의 동선을 알아낸 납치범들은, 얼마 후인 2002년 3월 6일 새벽 5시 반에 수영을 하러 나가던 피해자를 납치해 차에 태운 뒤, 마구 때리고 청테이프로 입을 막았다. 

이후 이들은 윤남신 씨와 김용기 씨에게 하 양을 넘겼고, 미리 보아 둔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의 인적이 드문 산기슭으로 이동하여, 그녀를 눕히고 잔혹하게 폭행한 다음 미리 준비한 공기총으로 얼굴과 머리에 총 6발의 총알을 쏘아 죽였다. 그리고는 그녀의 시신을 쌀 포대 속에 집어넣어 유기하고, 그 위에 흙을 덮어 위장한 뒤 산을 내려와 공중전화로 윤길자 씨에게 범행 성공을 보고했다. 두 사람 모두 살인이란 중범죄를 저질러본 적이 없었던 터라, 살인 당시나 살인 후 시신을 유기하는 과정에서 모두 허둥댔다고 한다.

윤씨는 조카와 김 씨의 범행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며칠간 의심하다가, 확신이 서자 돈을 주면서 그들을 해외로 출국시켰다. 이후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망명하라'고 지시하기도 하였고, 김 씨가 성형수술을 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대주기도 하였다.


수사의 진행

하 양의 아버지가 제공한 여러 가지 정보를 경찰이 조사하던 중 윤 씨와의 접점이 발견된 것은 사건 발생 1개월 후였다. 하 양의 아버지가 수상하다고 지목한 사람인 김용기 씨가, 윤 씨의 조카 윤남신 씨와 고등학교 동창이자 친한 친구 사이였던 것이다. 

그의 행적을 조사하자 공기총을 비롯한 범죄도구를 구입한 흔적이 포착되었다. 게다가 계좌추적 결과, 이 두 사람이 윤길자 씨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돈을 받은 것이 확인되면서, 사실상 모든 증거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카와 김 씨가 각각 베트남과 홍콩으로 도주를 해버린 데다, 일단 윤 씨를 입건하기는 했으나, 그녀를 조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서 수사가 큰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나 하 양의 아버지는 만사를 뒤로 하고 베트남으로 직접 출국하여, 현지 경찰과 교민사회, 인터폴과의 공조요청 등 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사력을 다한 결과 마침내 2003년, 중국 측에 관련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고, 중국 공안이 적색 수배 대상 국제 범죄자인 조카와 김 씨를 체포하여 강제 추방 조치, 국내로 압송 조치하게 된다.

체포되어 압송된 조카 윤남신과 김용기가 경찰 조사에서 사건의 전말을 자백하면서, 비로소 이 사건의 전말이 사회에 공개되었다. 

사건 발생 당시 명문 여대생의 처참한 죽음 때문에 주목받았던 이 사건은, 그 실체가 밝혀지면서 상류층의 도덕불감증이 심각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셈이 되어 더 큰 파문을 일으킨다.



이후의 진행

우선 납치범과 미행자들이 재판을 받았는데, 납치 가담자들은 징역 3년에서 3년 6월. 미행자들도 가담 정도에 따라 처벌되었다.

이후 살인범들에 대해서 2003년 11월, 첫 재판이 열렸으며, 검찰은 3명 모두에게 사형을 구형했으나, 1심에선 살인교사를 한 윤 씨에게 무기징역, 그리고 살인을 저지른 조카 윤 씨와 김 씨에게 20년이 선고되었다. 이에 반발하여 검찰과 이들 둘 다 항소하자, 2심에서는 죄질이 나쁘다는 이유로 윤 씨의 조카와 김 씨에 대해 오히려 형을 높여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살인을 교사한 윤 씨의 항소는 양형이 적절하다는 이유로 기각하였다. 윤 씨의 조카는 이번엔 엉겁결에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며 진술을 바꾸어서, 형량을 줄여보려고 상고이유서를 제출했으나, 대법원은 이 사건의 죄질이 너무 나빠,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이유로 원심을 확정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윤남신 피고의 변호를 맡았던 엄상익 변호사가 자신의 시각에서 정리하여 블로그에 남겼다. 관심 있는 위키러들은 읽어보도록 하자. 단, 공정하지 못한 시각에서 서술되었다고 여길 만한 부분들이 몇몇 있으니 주의하자. 참고로 길다. 12. 참고로 이 변호사는 이 사건이 세상에 밝혀진 뒤에 수난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이 끔찍한 사건은 막을 내리는 것으로 보였으나, 수감 중이던 윤길자가 2008년 형사소송법의 개정에 따라, 재판 당시 조카가 형을 깎아보려고 살인이 엉겁결에 이루어졌다고 말을 바꿨던 것을 토대로, 조카와 공범 김 씨를 위증죄로 고소하면서 다시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 이미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사회로부터 사실상 영구 격리된 조카와 김 씨는 위증죄가 추가되든 안 되든 달라질 게 없으므로 전혀 손해 볼 것이 없었으나, 이게 성립되면 윤길자는 살인교사죄를 벗어날 수 있었기에, 검찰에게도 상당히 골치 아픈 사건이었다. 

검찰은 윤 씨와 조카가 입을 맞춰서 윤 씨를 구하려 한다는 판단 하에, 어쩔 수 없이 조카의 위증죄는 무죄임을 증명하는 어이없는 변호에 나서야 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주면서, 조카와 공범의 위증죄에 대해서는 무죄로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피고인은 항소를 할 수 없고, 검찰 또한 항소하지 않았으므로, 항고심은 열리지 않았다.

2004년 무기징역이 확정되자, 회사와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안겨준 윤 씨는 남편인 영남제분 회장으로부터 곧바로 이혼을 당했다. 그녀의 정신 나간 범죄행각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윤 씨의 이런 강박적인 의심의 뿌리는 과거 남편의 잦은 불륜행각에도 원인이 있었다고 하지만, 정작 남편은 이혼을 하는 선에서 자신의 책임을 마무리했다.

사건의 또 다른 핵심인 김 판사는, 이혼은커녕 어떠한 대응도 없이 그대로 법원에 남아 계속 업무를 수행하였다. 법조계 내에서도 도의적 차원에서 판사직을 그만둬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했으나, 김 판사는 아무 말 없이 버티다가 적격심사대상자로 통보받자, 2012년 2월 6일 사의를 표명하며 판사를 그만두고 모 로펌에 변호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2013년 6월 29일,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서 자신의 장모인 윤 씨를 옹호하는 투의 발언을 했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상류층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대중에게 재확인해주는 사건이었으며, 또한 그들만의 분쟁에서 아무 죄 없는 사람만이 희생당한 비극이었다.

2014년 6월, 영남제분 회장이 보석으로 석방이 되었다. 2014년 2월, 법원은 1심에서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주치의에게는 징역 8개월을 선고하였다. 이후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014년 10월 30일,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과 주치의는 "나란히 실형을 면했다".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은 징역5년에 집행유예3년, 주치의는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10,000 달러를 받았는데 벌금은 500만원?. 재판부는, "우리 법은 자신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윤 씨의 남편이라는 이유로 류 회장을 무겁게 처벌할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2015년 3월 27일, 영남제분에서는 한탑으로 상호를 바꾼다고 공시하였다. 동해 4월 16일 상호가 한탑으로 변경되었다. News1 기사

범죄인의 형집행정지 오남용 의혹

2013년 4월 21일자 《시사매거진 2580》의 852-1화 〈의문의 형집행정지〉 편에서 다시 한 번 윤길자 씨의 근황을 조명하였다. 꾀병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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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내용은, 현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자신의 죄를 속죄하면서, 평생에 걸쳐 교정 및 재사회화되어야 할 윤 씨가 건강상의 이유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하루 입원료가 200만원을 넘는 모 의료시설의 VIP 입원실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 물론 윤 씨가 정말 형집행정지를 받아야 할 만큼 큰 병을 앓고 있다면 합당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 있었다.

윤 씨는 여기서 불편한 것 없이 살고 있으며, 심지어 외출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취재가 진행되자 다른 병원으로 옮겨갔을 뿐, 여전히 형집행정지 처분은 풀리지 않았다. 주치의의 허술한 소견서만 제출하면 얼마든지 형집행정지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주로 사회 고위층들이 이 형집행정지 처분을 이용하여 수감생활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 또다시 많은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상기 내용과 피해자 유족의 분노를 2013년 5월 25일자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었다.

하지혜 양의 부모님은 사건의 모든 기록]을 모아왔다. 아무 죄도 없는 딸의 사망도 억울한데, 교도소에서 하라는 반성은 하지 않고 형집행정지 제도를 악용해 병원에서 쉬고 있으니 역공은 당연한 것. 윤 씨 외에 다른 관계자들 또한 돈 앞에 양심이고 뭐고 없었으니, 하지혜 양의 부모님은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그리고 교도소 관계자가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게 제보를 해왔는데 제보 때 가져온 서류는 윤 씨의 형집행정지 이전까지의 교도소 일지였다.

몇 년에 걸친 윤 씨의 수감생활을 기록한 일지에 따르면, 윤 씨는 당시 교도소에서도 관심죄수라고 불렸고, 다른 수감자와도 자주 다퉜으며, 누구는 자신과 같이 넣지 말라고 하거나, 자신의 빨래를 해달라는 둥 바라는 것도 많았고 독실도 따로 요청했다.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 윤 씨는 교도소 의무과를 자주 찾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눈에 띄는 이상은 없었지만, 고령의 나이를 감안하여 적지 않은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2013년 5월 25일,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2005년 2월 21일 윤 씨의 수감일지 일부이다.

(윤 씨는) 독거수용을 요구하고, 자신의 지병 목 디스크 때문에 독거하더라도 청소, 빨래 등을 해주기를 요구하였다.”


아래는 2005년 5월 20일 윤 씨의 행동을 기록한 수감일지 중 일부이다.

같은 거실 수용자 2명과 말다툼을 자주 하였다. 타 수용자와 원만하게 지내지 못하여 타인에게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냐고 물으니
인간적으로 동등하게 보이지 않아요. 다만 동정심을 가지고 대할 뿐이지…. 제발 술집에 다니는 애들은 제 방에 넣지 말아주세요.”
  • 첫 집행정지: 2007년 7월 5일에 윤 씨는 첫 집행정지를 얻어낸다. 보건의료과장이 '검사기록은 검토했지만 우려할 상황이 아니다' 라고 했으나, 막무가내로 세브란스병원에 가서 오장육부를 비롯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종합검진을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10여일의 검사결과, 유방암 수술 등으로 집행정지를 얻어냈다. 교도소 의무관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극히 예외적인 일이라고 한다.
이후 윤 씨의 요구사항은 점점 늘어난다. 교도소에서 환자에게 지급되는 환자용 저염식은 냄새가 난다는 등의 이유로 거부했다. 그리고 자신은 암환자인데 환경 호르몬이 나오는 플라스틱 통에 든 식수는 먹을 수 없다고 거부하고, 이온음료를 마셨다. 그리고 2009년 1월 30일의 수감일지에 따르면, 윤 씨는 여기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등 올리는 침대도 없고 가습기도 없고 그래서 너무 힘드니까 병원에 나가서 한 달만 있다 오게 해달라고 하며, 자신의 현재 상태를 위에 보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 2번째 형집행정지: 윤 씨는 2009년 12월 22일에 2번째 형 집행정지를 허가 받는다.


이 집행정지 허가에 대해 《그것이 알고 싶다》 측이 만나본 한 전직 교도소 의무관의 말을 인용해보면,

유방암과 당뇨병 등의 치료를 위해 형 집행정지를 받았다. 유방암 치료 다 끝났잖아요. 당뇨, 당뇨 환자들 교도소에 엄청 많아요. 당뇨 다 나가는 거 아니거든요. 당뇨 때문에 생긴 신부전증이나 그런 합병증이 심해져서 나가겠다는 건 이해가 가는데 그것도 아니잖아요. 이거 보면서 이 사람 원래는 뭐하던 사람이지? (교도소 오기) 전에는 뭐하던 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했었어요.


아래는 윤 씨의 형 집행정지 내역이다.

2007년 07월 05일 형 집행정지 3개월
2007년 10월 24일 형 집행정지 20일 연장
2009년 12월 22일 형 집행정지 3개월
2010년 03월 21일 형 집행정지 5개월 연장
2011년 06월 17일 형 집행정지 3개월
2011년 09월 16일 형 집행정지 3개월 연장
2011년 12월 16일 형 집행정지 3개월 연장
2012년 03월 17일 형 집행정지 3개월 연장
2012년 06월 17일 형 집행정지 3개월 연장
2012년 12월 17일 형 집행정지 3개월 연장


이것만 해도 거의 4년에 걸쳐 행해진 형 집행정지이다. 그리고 더더욱 눈에 띄는 건 윤 씨가 병원 입원 중 잦은 외출을 했다는 점이다.

2007-10-16 외출
2007-10-18 외출
2007-10-21 외박 1일
2007-10-27 외박 1일
2007-11-20 외박 1일
2007-11-23 환자 원하여 퇴원, 방사선 치료 외래에서 진행

2008-04-09 외출
2008-06-13 외박 2일

2010-04-02 (금) 4월 7일, 여의도성모병원 안과진료 있어 외출 원함 (외출하고 나서 타병원 진료 확인서, 소견서 갖고 올 것)
2010-04-07 (수) 외출
2010-04-23 (금) 외출 (성모병원 외래)
2010-04-27 (화) 외출 (성모병원 외래)
2010-05-04 (화) 외출 (성모병원 외래)
2010-07-05 (월) 외출 (타병원 진료)
2010-07-12 (월) 여의도성모병원 안과 외래로 외출
2010-08-01 (일) 외출 다녀옴. 〇〇〇에게 TO 외박, 외출 서약서 없음
2010-08-04 (수) 환자 8/4부터 2박3일간 외박 원함. 외박, 외출 서약서 없음
2010-08-08 (일) 외출 돌아옴. 외박, 외출 서약서 없음
2010-08-09 (월) 성모 병원 안과 외출, 외박, 외출 서약서 없음

2011-06-08 (수) 외출 (금일 포항에 일이 있어 외출 가고 싶어요)
2011-06-10 (금) 외출 (여의도성모병원 안과)
2011-07-29 (금) 외출
2011-08-05 (금) 외출
2011-09-08 14일 외출시 IV뮤비 원함. 진료 협력센터 및 간호국, 병동에 문의
2011-09-14 (수) 외박 1일(인감 목적으로 자택=포항), 서대문 경찰서에서 현재 몸 상태에 대해 문의함. 2011.08.25. 발급된 진단서 근거 하 설명드림
2011-11-04 (금) 성모병원 안과

2012-01-17 (화) 외출 (가사)
2012-01-31 (화) 외출 (가사)
2012-03-02 (금) 외출 (가사)
2012-05-08 (수) 외출
2012-06-02 (토) 외출
2012-08-04 (토) 외출 (민간요법)


방송 등에서도 나온 한 가지 예를 들면, 윤 씨는 자신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고 한 적이 있는데, 윤 씨의 주장대로라면 일상생활도 하기 힘들 정도임에도 병실 내에서 버젓이 혼자 돌아다니며 외출까지 한 것.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숟가락을 들 때도 손을 덜덜 떠는, 전형적인 파킨슨병 환자의 모습을 보였다.

한 변호사는, 형 집행정지 기간에 외출할 수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은 없다고 하며, (교도소에 있을 때) 허용할 경우 교도관이 동행을 하며, 병원에서 외출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외출할 수 있으면 교도소로 돌아와야 된다는 것.

그렇다면 윤 씨가 아닌 다른 수감자의 경우는 어떨까? 구치소에 있는 남편이 폐렴이 심하고 면역에도 문제가 있어 죽을 수도 있다고 응급실로 단 하루만 보내달라고 부인이 애원했다고 한다. 당시 해당 수감자는 암수술이 끝난 후에 수감되었고 고열이 심했다고 한다. 강력범죄자나 중형을 받은 사람도 아닌, 횡령으로 징역 6개월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구치소 측은 곤란하다며 계속 거절했다. 겨우 의사의 진단은 받을 수 있었으나 꾀병이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결국 수감자의 부인이 법을 공부해서 집행정지 6개월을 얻어냈다.

그런데 윤 씨는 전문가들도 이해가 안 된다는 진단서 등을 바탕으로 수년에 걸쳐 집행정지를 얻어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측은 윤 씨의 담당 검사들과 접촉을 계속 시도했지만,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했다. 결국 지방검찰청에 공문을 발송하여, 6년간 형집행정지가 가능한지 문제를 제기했는데, 검찰청은 방송시기가 있으니 오래 안 걸릴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답변을 했다. 그리고 재검사 결과, 수감생활에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었다는 이유로, 5월 중순 윤 씨의 형집행정지를 전격 취소, 교도소로 다시 보내버렸다. 그것도 언론에 보도 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알고 싶다》 측에서 집요하게 검사의 인터뷰 등을 요청하던 그 시기와 일치한다. 결국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다루기 이전까지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반복했고, 검찰과 병원 등 소위 가진 사람, 배운 사람이 사법제도 근간(根幹)을 무시해 버리는 행동을 해왔다고 해도 딱히 반박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다.

그리고 영화같이 속편(...)이 나왔다. 윤 씨가 전국 교정시설에 있는 모범수들 가운데 심사를 거쳐 선발된 수형자들이 가게되는 화성 직업훈련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난방시설이 완비돼 쾌적한 수용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소개돼 있는 곳이다. 



사회에 끼친 영향

방송 이후 그 파장은 엄청났다.

2013년 초부터 급격히 이슈화되기 시작한 갑의 횡포로 인해 시민들이 생각하는 소위 '많이 가진 자들의 부도덕한 행위' 등에 대한 반감이 엄청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대대적인 방송 이전까지는 공공연히 행해져 왔었다는 것에 분노하여, 관계자들인 윤길자 씨, 그녀의 주치의, 형집행정지를 허가한 담당 검사들을 엄벌에 처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관련자들의 실명은 물론 사진까지 퍼지고 있다.

더욱이 영남제분의 전 사모였다는 것에 분노, 영남제분에 관련된 상품 불매운동까지 이어지려 하고 있다. 영남제분은 회사와는 관련이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지만, 주가는 연일 하락 중. 그리고 다시 올랐다. 취직 관련 카페 등에서는 취업하면 안 된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31] 게다가 이 전 남편 분께서는 직접 SBS 《그것이 알고 싶다》 PD를 찾아가서, '왜 12년 전 사건 다시 들춰서 손해를 주느냐, 취재를 중단해 달라. 쉽게 형집행정지 받은 거 아니다' 라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늘어놓다가 욕을 더 먹었다.

거기에 매출 감소가 지속될 경우 직원들에게 더 큰 피해가 갈 것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의사협회에서도 분노한 여론 때문에 진상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의사면허 박탈 등이 불가피할 듯하지만, 의사협회는 사법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의사에게는 제명 조치 이상은 하지 못한다. 대신 문제의 의사는 의료법 및 형법 제233조 위반(허위진단서작성죄) 등으로 고발당했다. 그리고 문제의 의사가 근무하던 병원 또한 후폭풍이 불었다.

허위진단서를 작성하고 윤 씨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던 신촌 세브란스 병원은 6월 13일 검찰에게 압수수색당했다. # 해당 의사에 대한 교내 윤리위원회도 열렸다고 한다.

여담으로,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윤길자 씨의 장기 입원 소식을 최초로 알리고 진정서를 작성해준 사람은, 이후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도 한 장기재원환자관리위원회 위원장이자 윤길자 사모 주치의의 동료 교수인 한석주 교수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주변의 의사들을 통해 조사했다는데, 결론은 진짜 환자가 아니라는 것. 이에 한석주 교수는, 윤 씨가 살인을 저지르고 무기징역을 받았으면서도, 정당한 사유도 없이 감옥에서 나와, 병원에 거주하다시피 한다는 사실을 의료인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어,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2013년 6월 29일,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해당 사건의 후속 보도가 방송되었고, 이 역시 큰 파장을 일으켰다. #

2013년 《월간중앙》 8월호에 문제의 사위, 김 판사, 지금은 김 변호사의 인터뷰가 실렸다. 관심 있으면 직접 보고 판단하도록 하자. '사촌동생 지혜의 죽음은 장모의 오해와 집착이 빚은 비극'

해당 주치의와 주치의에게서 교육을 받은 후배의사 100여 명이 집단으로 탄원서를 제출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와, 누리꾼들의 분노를 샀지만 해당 보도는 오보. 법원에선 의사들의 탄원서를 받은 적이 없다며 논란을 부인했다.

검찰은 주치의 박모 교수에 대해 징역 3년형과 추징금을 구형했다. 허위 진단서를 작성하여 윤 씨에 대한 형집행정지를 도운 것으로, 사실상 합법적 탈옥의 주요 조력자였으며, 이에 대한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것은 의료인의 양심에도 어긋나는 행위일 뿐 아니라, 형사사법질서를 흔든 중대 범죄라며 구형 취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 박모 교수는 혐의를 부인하며, 진단서에 거짓은 없었으며, 의사로서 환자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따뜻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해왔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영남제분의 개입

이에 대해 영남제분 회사는, 자사는 사건과 무관하며, 해당 방송이 11년 전 사건을 들춰 회사에게 타격을 입히고 있다며, 방송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올렸다. 영남제분은 본인들은 해당 사건과는 아무 관련도 없으며,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측에서 편파보도와 근거 없는 루머에 편승하여 방송을 내보낸다며, 방송 중단을 요구하고 또한 루머나 비난에 대해 강경대응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회사 측이 올린 이 호소문은, 윤길자 씨의 전 남편이 방송사 PD를 찾아가서 한 말도 안 되는 주장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던지라 오히려 역풍을 맞았고, 이게 대체 호소문인지 협박장인지 모르겠다며 배로 까여, 오히려 검색어 순위권을 상당히 오랜 기간 지키는 등 여론만 악화시키고 주가는 폭풍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영남제분 호소문과 관련해, "제정신이 아닌 회사가 이제 국민을 공갈, 협박합니다" 라는 글을 리트윗하며 강하게 비난했다.

물론 아래 '영남제분 불매운동관련 다른 의견' 에 나와 있듯, 방송 즉각 중단에 관해 협박조로 나온 것은 잘못된 거지만, 아무 상관없는 임직원들이 다치고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는 사람도 있었고, 전 회장 사모가 범죄자라고 해서 회사까지 범죄에 가담한 건 아니지 않냐, 는 여론도 있었다.

그러나 회사가 작성한 해당 호소문의 내용은 얼마 후 거짓으로 밝혀졌다. 윤길자 씨에 대한 허위 진단서 작성 의혹을 수사하던 서울서부지검은, 형집행정지를 위한 허위진단서 발급 대가로 영남제분 측이 세브란스 병원 박모 교수에게 금품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하였다고 한다. 즉 자회사와 사건은 완전 무관하다는 회사 측의 주장은 거짓이었으며, 최소한 회장 일가만큼은 관련이 있었던 셈. 결국 영남제분은 7월 9일 검찰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했고, 주가는 엿새째 하락하며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어, 제2의 남양유업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의견이 늘어나기도 했다.

또한 윤길자 씨는 과거 청부살인사건 확정판결 직후 류 회장과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두 사람은 이혼한 적이 없고 아직도 법적인 부부라는 의견이 검찰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한다. 위에서 돼먹지 않은 실드를 쳤을 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제기한 대로, 류 회장은 윤 씨에게 하루 200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비롯한 경제적 지원을 계속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는 불법 행위에 협력하여 공무집행을 방해한 것으로, 사법처리가 불가피해 보인다. #

2013년 8월 29일, 검찰은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준 세브란스 소속 의사와 돈을 건넨 영남제분 대표이사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결국 2013년 9월 3일, 영남제분 전 회장과 주치의 둘 다 구속됐다. 구속된 회장에게 밀가루 세례는 보너스유튜브

2013년 9월 16일, 주치의와 영남제분 대표이사를 검찰이 구속기소 하였으며, 한국거래소는 영남제분 류원기 현 대표이사에 대한 15억 7,000만원의 횡령과 61억 9,000만원의 배임 혐의를 확인하여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여부 결정일까지 거래가 정지됐다. 사건과는 별개로, 이미 썩을 대로 썩은 회사였던 것.

한편 영남제분 측이 네티즌들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고소를 모두 취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류원기 현 대표이사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 공개되었는데, 바로 이 사람이 영남제분 회장일 뿐 아니라 37년간 역도계에 종사한 역도인, 거기다현재 대한역도연맹 회장이란 사실이다. 과거도 아니고 현재 회장이 이런 사건에 연루된 데다, 그 범죄를 막장 논리로 실드치고 심지어 뇌물을 수수하여 형 집행정지를 주도했다는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데다, 온갖 썩어빠진 비리까지 다 들통 난 마당이라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되는 상황. 이 사건은 파도 파도 끝없이 무언가가 쏟아진다. 도대체 이 사건의 파장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리고 류원기 회장은 회사자금 87억여 원을 빼돌리고, 이 중 2억 5천만 원을 아내 윤길자 씨의 입원비 등으로 사용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장미란 포함 역도인들 300여명이 피고인 류회장이 평상시 역도의 발전을 위해 힘써온 점을 감안하여 선처를 요구한다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며, 또다시 여론은 발칵 뒤집혔다. 탄원서를 제출하라는 강제성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으나, 연맹 관계자에 따르면, 서명한 회원들끼리 자발적으로 주도한 것이라 하며, 이에 따라 질타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그야말로 논란이 논란을 낳는 형국의 연속.

그러나 위의 탄원서는 장미란 선수의 인터뷰를 통해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데또 페이크다 병신들아!!!, 아무 내용도 적혀있지 않은 종이에 서명 리스트만 있고, 이를 경기 중이나 훈련 도중 등에 가져와서 대충 서명을 요구했고, 선수들은 다른 이름들이 적혀있으니 그냥 서명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내용도 없는 리스트에 서명을 한 것은 실수이지만, 애초에 일부러 선수들이 정신없이 바쁠 때 서명을 유도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장미란 선수 역시 내용도 모르고 서명한 것에 대해서 반성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배상 문제

참고로 이 사건의 경우, 주주들은 법원에서 최종 유죄판결이 나면 영남제분 회장 일가를 고소, 그들이 저지른 불법행위로 기업의 이미지가 나빠져 자신들이 손실을 입은 것에 대해서 배상받을 권리가 있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이 사건은 불법 행위로 인해 주주들이 영남제분으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입은 것이기 때문이다.

배상 문제에 관한 다른 의견

불매운동에 따른 유죄 판례는 현재까지 없다. 불매운동 주도자에 대한 협박성의 기소는 몇 차례 있었지만, 불매운동 주도에 대한 유죄선고는 아직까지 판례에 없으며 신문광고중단 불매운동의 죄목도 어디까지나 협박죄로 판결이 났다(해당 페이지 참조). 반대로 말하면, 협박만 하지 않으면 불매운동을 함으로써 당신에게 주어지는 불이익은 없다. 더불어 주주들은 영남제분 회장 일가를 고소함으로써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의견은 맞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면에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들에 대한 죄책감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긴 하다.

반대로, 불매운동을 통해 어떠한 종류의 이득을 편취하려 한다면, 협박죄가 성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주의를 요한다.

영남제분의 고소

8월 22일, 영남제분 회장 측은 악성 댓글을 달았다면서 네티즌 100여 명을 광역 고소하는 위엄을 보였다. 사실상 불매운동에 대해서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 그러나 세간에서 이 고소를 어찌 볼지는 의문이다. 그보다 공무집행방해부터 해명하시는 게 순서 아닌가? 하지만 회장이 공무집행방해로 구속되면서 고소를 이어 나아갈지는 불투명하다.

2013년 9월 경, 영남제분 측은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MBC 시사매거진 2580 소속 기자를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 등으로 고소하였다. 이 분보다 잘하시는듯.

관련자가 저지른 또 다른 사건

당시 의료자격을 박탈당하지 않았던 정신과담당 전문의가 결국 또 다른 사고를 저질렀다.

한 어촌마을의 요양병원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 입원 후 7시간 만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는데, 무연고자로 신고 되었고 화장 뒤 은폐하려 했으나, 약 20여일 뒤 보호자가 밝혀진 것이다. 여기까지만 듣는다면 많이 알려진, 썩어빠진 인간들의 인간보다 못한 것들의 악행이라고 하겠지만, 문제는 그 병원의 원장이었다. 다름 아닌 윤 씨의 정신감정 담당의가 원장으로 있는 병원이었던 것이다! 

이 병원이 운영되는 방식은 노숙인들과 무연고자들을 대상으로 식사와 담배를 사주고, 기초생활수급자로 만들어준다고 꼬드긴 뒤 술을 먹이고 병원으로 데려간다. 이렇게 병원으로 가게 되면, 약 일주일가량을 '안정실'이라는 곳에서 머물게 되는데, 안정실에 들어가면 손발을 묶어두고 일주일간을 머문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손을 공중으로 향하게 묶어둔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심장에 무리를 주는 행위라고 한다. 사실상 감금과 다름없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일반 병동으로 옮겨진다. 이런 방식으로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수백여 명을 병원에 입원시켰고, 이 과정에서 결국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 병원 원장이 이렇게 병원을 운영한 이유는 다름 아닌 '돈'이다. 병원은 환자 1인당 150에서 200여만 원을 보조금으로 챙겼고, 이런 방식으로 1년이 안 되는 사이에 약 15억원에 가까운 돈을 벌었던 것이다. 이 병원에서 급식을 위한 배급까지 환자가 하는, 기도 안 차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의료행위도 없다고 한다. 해당 지역의 관할 보건소에서 1년에 2번 정기점검을 가는데, 경찰과 의료담당팀이 갔지만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니 불신이 쌓이지. 

하여튼 병원 원장은 구속되었지만, 그 뒤 한동안 부인이 병원을 운영했는데, 인터뷰에서 '원장님은 환자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이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언론이 그렇게 만들었다' 라고 발언한다. 야!!!!!!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이 쉽게 용서될 리가 없다. 병원은 8월 29일 폐쇄되었고, 원장은 유인감금 및 의료법위반으로 구속수감 되었다.

그러나 사망자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고 말았으며, 당시 91세이던 노모(老母)는 아들의 사망사실을 알지 못한 채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망자의 가족은 그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해 소송을 했고 재판을 진행 중이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지만, 세브란스 병원의 의사자격이 박탈될 당시, 이 사람도 어떻게든 의료행위 등을 못하게끔 강력한 처벌을 받았다면, 사망자를 비롯해서 피해자들도 없었을 것이고, 더불어 피 같은 세금이 보조금으로 지급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제2의 사모님 사건?

2013년 7월 27일, 《추적 60분》에서 강남 보석 사기사건의 범인인 여성이 형집행정지 상태에서 도주한 사건을 다루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의 부인인 유 모 씨는, 강남의 전당포에 유실된 보석이 있는데 투자금을 주면 이 보석들을 팔아서 나오는 이익금을 나눠주겠다고 속여서 거액을 편취했고, 결국 사기로 구속되어 수감되었지만 질병을 이유로 형집행정지로 풀려나온 뒤, 형집행정지 만료기간이 지났는데도 감옥으로 돌아오지 않고 도피중이라는 것.

윤길자 씨와 마찬가지로 형집행정지를 악용해 감옥을 나온 부분은 같지만, 탈주했다는 점에서 아스트랄한 사건이다. 심지어 《추적 60분》 취재진이 취재한 결과, 이 여성은 가족들과 강화도에서 물놀이까지 즐길 정도로 도망자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여유를 부렸지만, 검찰은 묘하게도 이 여성에 대한 추적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윤길자 씨처럼 방송 타서 여론 나빠지면 그제야 열심히 추적하려고? 게다가 남편인 변호사는 유 씨의 도피를 돕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검찰이 질타를 면키는 어려울 듯하고, 형집행정지에 대한 개혁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보이지만, 아직까지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조차 발표하지 않고 있다. 국회 차원에서 제2의 사모님을 막기 위한 형집행정지 제도의 손질이 추진되고 있다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는 없는 상황. 얼마나 많은 돈 많고 빽 있는 자들이 형집행정지를 남용해서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파악조차 안 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제도를 손질할 권한이 있는 의원나리들 스스로가 현재의 형집행정지제도의 미래의 잠재적 수혜자이기 때문에, 시늉만 할뿐, 실질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긴 어려울 거라는 냉소적인 의견도 있다.

피해자 어머니의 사망

2016년 2월 22일 자택에서 사건의 피해자 하씨의 어머니 설모씨(향년 64세)가 사망하였다고 알려졌다. 관련기사
조선일보에 따르면 설모씨의 남편은 "아내만 보면 딸 얘기가 나와 견디기 어렵다"며 2006년 강원도에 집을 얻어 따로 살았으며 아들은 결혼 후 분가하여 고인 혼자 딸을 잊지 않으려 고인이 숨진 산이 보이는 집에서 혼자 지내왔다고 한다. 
집을 찾은 아들은 거실에 애완견 배변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의 죽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사인은 키 165cm인 고인의 체중이 36kg까지 빠진 점, 집안 곳곳에 빈 술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식음을 전폐하여 영양실조에 의한 아사로 추정되고 있다. 유족에 따르면 끼니를 2~3일 거르는 것은 예사였다고 한다.

한 여성의 미친 행동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수 많은 사람들의 노력 결과 우여곡절 끝에 범죄자는 결국 죄값을 치르게 되었지만, 결국은 한 가정을 남김없이 참혹히 파괴하였다. 홀로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을 피해자 하씨의 어머니 故 설모씨에게 위키러들은 어머니가 천국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명복을 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