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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wboy Bebop
고대 신라에 있었던 일종의 아이돌이자 대학생이자 지휘관격인 엘리트 집단. 신라시대의 사관학교 생도 정도의 지위이다. 시작은 진흥왕 때로 기원은 미스코리아처럼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둘을 뽑아 아이돌처럼 삼아서 그들을 매개로 인재를 모으는 원화 제도였는데, 두 원화 남모와 준정 간에 서로 간의 시기심으로 살인이 일어나자 여자 대신 곱상한 남자들을 모집해서 화랑이라고 부르게 했다. 다만 화랑 제도를 만들었다는 576년 이전에도 사다함 같은 화랑이 존재하였으므로 이전부터 신라에 비슷한 개념이 존재는 했고 576년의 기사는 화랑제도를 정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화랑들은 주로 귀족의 자제로 이뤄졌으며 평민부터 하급 귀족으로 구성된 '낭도'를 거느리고 지휘했으며, 신라 땅 이곳저곳 깊은 산과 계곡을 돌..
묘호광종(光宗)시호홍도선열평세숙헌의효강혜대성대왕 (弘道宣烈平世肅憲懿孝康惠大成大王)연호광덕(光德) 준풍(峻豊)능묘헌릉(憲陵)성왕(王)휘소(昭)자일화(日華)배우자대목왕후(大穆王后)아버지고려 태조 왕건(王建)어머니신명순성왕후(神明順成王后)생몰년도음력925년 ~ 975년 5월 23일양력925년 ~ 975년 7월 4일 (51세)재위기간음력949년 3월 13일 ~ 975년 5월 23일양력949년 4월 13일 ~ 975년 7월 4일 (26년 88일)사망지고려 개경 정궁 왕위쟁탈전을 겪은 고려를 부여잡고 호족 세력을 숙청하고 중앙집권적 관료제 국가를 수립한 고려판 이방원.실질적으로 고려 왕조라는 나라 자체의 기반을 단단히 마련한 명군. 고려의 제4대 왕. 태조 왕건의 넷째 아들로 신명왕후 유씨의 소생. 형인 혜종과 정..
묘호대종(戴宗)시호예성선경화간공신현헌태왕(睿聖宣慶和簡恭愼顯獻太王)능묘태릉(泰陵)성왕(王)휘욱(旭)배우자선의왕후(宣義王后)아버지태조어머니신정대왕태후(神靜大王太后)생몰기간? ~ 969년 11월 제4왕후인 신정왕후 황보씨 소생의 7남. 969년 11월 사망. 성종은 물론 고려 경종과 결혼한 헌애왕후, 헌정왕후(현종의 어머니)의 아버지이다. 성종이 즉위한 후 추존되었다. 시호는 대종예성선경화간공신현헌태왕(睿聖宣慶和簡恭愼顯獻太王). 흔히 묘호인 대종(戴宗)으로 부른다.
인천 상륙 작전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UN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시작된 상륙작전이다. 이 작전에는 7만 5천여명의 병력과 261척의 해군 함정이 투입되었고, 대한민국의 서울 탈환으로 이어져 한국 전쟁 전반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작전 암호명은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이었다. 인천 상륙 작전 다음 날의 인천항 맥아더는 1950년 6월 29일, 전쟁이 발발한지 4일 지난 뒤에 한강 방어선을 시찰하며 조선인민군의 후방에 상륙, 병참선을 차단하고 낙동강을 통해 반격에 들어간다는 기본 전략을 세웠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미국 해군은 인천항의 간만의 차가 평균 7미터로, 항구에 상륙하기 전에 월미도를 먼저 점령해야 하는데다 선단의 접안지역이 좁아..
(일본에 강제 유학길을 오르는 나이 14세 이전. 히노데(日出) 심상소학교 시절에 찍은 사진이다. 얼굴이 정말로 할아버지를 닮았다) 다른 사진이 있다면 1912년 5월 25일~1989년 4월 21일 대한제국의 황족. 복녕당(福寧堂) 귀인 양춘기(梁春基)의 소생으로, 고종황제의 고명딸이다. 순종황제, 의친왕, 영친왕의 이복 여동생으로, 보통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기억된다. '덕혜'는 1921년에 순종황제가 내려준 작호인데, 그 이전에 따로 이름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어서 훗날 대한민국 호적에 올릴 때 '이덕혜'가 성명으로 올라갔다. 흔히 이 덕혜옹주를 조선의 마지막 공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진짜 조선의 마지막 공주는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4녀인 덕온공주(23세로 요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중종과 문정왕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왕이 되기 전에는 경원대군(慶原大君)이었으며, 인종이 즉위할 때까지만 해도 그저 전왕 중종의 아들이자 현왕인 인종의 이복동생일 뿐이었으나 인종이 즉위한지 8개월만에 급사함으로서 왕이 되었다. 어릴 때 양눈에 안질이 있었다는데 인종의 갑작스러운 승하로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느낀 윤임이 대군은 안질 때문에 눈이 안보이니 왕을 못한다는 핑계로 그를 후계 선상에서 제외시켜보려 했지만 이언적 등이 대군의 승계를 지지하고 문정왕후가 강력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포기하게 됐다. 따라서 생모인 문정왕후 윤씨가 수렴청정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대윤의 대신들과 사림들이 대거 숙청되었고, 권세를 얻은 소윤(왕의 외숙부 윤원형) 일파의 부..